있는그대로 이해한다
작년 5월말, 화섭씨가 퇴사했을때 우리 가족은 회식을 했다. 그동안 시끄러운 인쇄소 다니느라 수고했다고 인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의미였다. 이제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으니, 한번 더 부페를 갔다. 딸기 축제를 하는 애슐리로.
그간 봉와직염으로 아팠던 지라, 미리 야채 먼저 먹으라고 일러줬다. 카지노 게임 입장에 앞서 다시 한번 어디가서 먹냐고 묻는 화섭씨.
“샐러드바에서 야채부터 먹고, 고기와 초밥 먹고, 딸기도 먹어. 밥과 면은 자제하고.”
맛있는 미국식 음식 그림이 걸려있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악이 나오는 분위기가 참 좋다. 엄마는 딸기를 먹고 싶다 하셔서, 야채와 딸기부터 가져다 드렸다. 화섭씨는 내 말을 눈여겨 듣더니 야채와 요거트부터 먹는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 감고 먹는 화섭씨. 다양한 감각이 들어오는 새로운 장소라서 본인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감각을 차단하는거다. 이제는 이해가 된다.
딸기 디저트와 같이 마실 커피를 가지러 갔다. 내 옆에서 화섭씨가 섰다. 카페라떼 만들어 카지노 게임 법이 전시되어 있다. 이걸 먹고 싶다고 컵에 얼음을 담아오는 화섭씨. 우유를 담아야 하는데 어딨어? 하니 저기 있다고 갔다온다. 에스프레소까지 알뜰이 담아왔다. 식탁에 놓은걸 보니 깔끔하고 예쁜 레이어드가 보이게 카페라떼를 만들었다.
디저트들과 카페라떼를 원샷하고 이제는 집에 가겠다는 카지노 게임. 단 디저트 때문인지 목이 마르다고 해서 보리차 있는곳을 알려주니 못찾는다.
낯선데 나와 있으니 약간은 당황스러워 시야가 좁아지는걸 알겠다. 마치 예민한 고양이 같다. 고양이를 이해하면서, 인간을 이해 못할쏘냐.
음료 있는데까지 데려다 주었다. 맛있게 보리차를 마시고, 작별의 손을 드는 카지노 게임. 화섭아, 잘가. 같이 있어줘서 고마와.
카지노 게임를 보내놓고, 엄마랑 이야기했다.
“화섭이가 카지노 게임 감고 먹잖아. 나도 어렸을때 저랬는데. 낯선 장소 오면, 왠지 부끄럽고 사람들이 옆에 있는게 신경쓰이고 불편해서 학원이나 독서실도 못갔잖아.”
“네 아버지도 그랬어. 신혼때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가구가게에 못들어갔어.”
나랑 카지노 게임이가 감각이 예민하고, 부끄러움이 있고, 많은 생각이 드는게 유전이구나 싶었다.
그런것치곤 아버지께서 서울에 혼자 올라와 직장을 평생 다니신게 대단하시구나 싶었다.
그런 면을 우리 남매도 가지고 있지만, 잘 다루도록 후천적으로 훈련하면 된다.
지금 시대는 훈련하는걸 도와주고, 이런 면을 이해할 객관적인 정보도 있고, 아버지 시대는 없다는게 차이일뿐이다.
우리 남매는 둘다 무식상이다. 무식상은 말솜씨 부족하고, 재미나 즐거움도 없지만, 없는 것대신 다른걸 잘한다.
무식상의 남매는 조용해도 옆에서 존재해주는게 대화 하는거다.
있는그대로 있어주는게 가치있다는것도 이제는 안다.
조용하게 식사하는 우리의 외식타임은 이렇게 있는그대로 즐겁다. 예전에 봤던 미국인 자폐인 가족이 외식을 하러 식당에 갔던 영상이 떠오른다. 상동행동이 심하던 소년이 아들이었다. 중얼거리고, 식당에 물건들을 건드렸다. 이를 이해를 못하는 어떤 남자가 시비를 걸었다. 한 어른이 나타나 장애가 있는 아이라 그런거고,장애가 있어도 공공시설에서 식사하는걸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가족과 식사하는건 아주 중요한거라고. 그 가치 있는걸 배울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사소한것 같지만,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감각이 발달해 낯선 장소에서 눈을 감고 있지만, 함께 한다는것만으로 중요한 일을 했다는걸. 예전엔 그런 철학이 없어서 TV나 영화에 나오는 대화많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 가족이다. 존재만으로 감사한것.
우리는 이렇게 작은 감사를 인지하며 만족하며 산다. 만족이 행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