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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이병현 Mar 03. 2025

카지노 게임 추천는 왜 죽었을까

봉준호의 〈카지노 게임 추천 17〉

봉준호 감독의 신작 〈카지노 게임 추천 17〉을 봤다.

〈설국열차〉와 〈옥자〉가 봉준호 커리어에서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번에도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이번 영화는 앞선 두 영화에 비해 괜찮았다. SF장르적으로 흥미로운 구석은 전혀 없는 작품이지만(일반적인 SF영화 컨벤션을 고의로 빗겨나는 부분은 있다), 대부분의 SF영화가 SF소설에 비하면 장르적으로 흥미로운 구석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미국 할리우드 SF영화에 비춰봤을 때 이 정도면 크게 불평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생각해보면 〈괴물〉까지 포함해서 여덟 편의 영화 중 무려 4편이 SF에 속한다. 봉준호의 세계를 논할 때 이제 SF는 반드시 논해야 하는 주제가 됐다.

이번 영화는 이전 두 영화의 집대성 같은 면도 있다. 이를테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크리퍼 무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그들이 울부짖는 장면은 〈옥자〉에서 도살장 앞에 있는 동물들이 울부짖는 장면과 비슷해보인다. 또 우주선 내부의 세계, 특히 음식으로 계급이 확연히 갈리는 것처럼 묘사되는 부분은 〈설국열차〉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번 작품은 특이하게도 〈설국열차〉와는 달리 제도의 한계가 아닌 회복 가능성을 믿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케네스 마샬은 분명 SNL 버전 트럼프 같은 모습의 악질 정치인이지만, 그가 전권 사령관을 맡는 과정은 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쳐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반대표도 상당하다는 점을 영화는 알려준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 위원회라는 시스템을 통해 일종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거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SF에 흔히 등장하는 '빅브라더' 같은 독재자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설국열차〉와 같은 세계관으로 캐릭터를 그렸다면 "가혹행위를 기록해"라고 말하는 사람들한테도 "이걸로 끝이 아니다!" 같은 반전이 하나 더 있었을 텐데, 그게 없다는 점("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운동권에 몸담았던 경험을 영화에 종종 반영한다. <괴물에서는 과거 운동권이었다가 변절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설국열차에서 길리엄과 윌포드의 내통은 학생운동의 리더와 형사가 시위의 수위를 어디까지 할지 결정하는 전화통화를 한 것에 힌트를 얻었다.")에서 이건 분명 뭐가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뭐랄까, 그게 엄청나게 결정적인 전환은 아니고 "계엄 때문에 졸지에 좌파인 내가 헌법·체제 수호자가 되어버렸다"고 농담하는 운동권 아저씨들 같은 세계관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어찌됐건 이것은 감독이 가진 세계관의 변화라기보다는, 이번 영화에 사랑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면서 생긴 일련의 나비효과 같은 전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SF라는 걸 홍보차 나온 인터뷰 자리에서 연거푸 강조하는 봉준호 감독의 태도를 봐도 그렇고) 혹은 〈설국열차〉가 자본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라 그렇다고 봐도 되겠지.

(이하 스포일러)




영화관을 나서며 내가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죽음을 선택하는 대목이었다. 내 생각에 해당 장면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18은 굳이 자폭을 택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은 전형적으로 'How It Should Have Ended' 같은 유튜브 채널에서 농담따먹기 식으로 다른 전개를 지어낼 만한 그런 허술한 장면이다. 케네스 마샬을 죽일 방법이 정말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자폭하는 것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난 대체 왜 카지노 게임 추천18은 저기서 자폭을 했는가, 하는 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너무나 긴박해서 자폭을 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케네스를 죽일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1개 소대"가 케네스와 같이 나온 상황이고, 분명히 근처에 다른 차(이동수단?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가 두 대 더 있었다. 케네스를 죽이려다가 영영 기회를 놓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혹은 케네스를 무력화시키지 못한 채 놓치면 달아낸 케네스가 버튼을 눌러 카지노 게임 추천17과 18을 폭사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딱히 이 상황을 그런 방식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케네스 마샬을 구하러 다가오는 병사와 차량을 보여주거나, 케네스가 몸싸움을 벌이며 버튼을 향해 손을 뻗는 등 '지금 당장이 아니면 못 죽여!'식의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이게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있나? 라는 점을 두고 해당 장면을 복기해봤다. 다소 부정확한 묘사일 수 있지만 대략 이런 순서로 화면이 나열됐다.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마마 크리퍼를 향해 소리친다. 그걸 본 카지노 게임 추천17과 나샤가 카지노 게임 추천18을 향해 달린다. 제압당한 케네스 마샬이 먼저 카지노 게임 추천18에게 "너도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인간이란 뜻이지. 나와 손을 잡자"는 투로 말을 건다. 카지노 게임 추천18은 잠깐 멈칫, 하며 짧게 고민하는 듯보인다. 그 사이 마샬의 팔에 달린 두 버튼과 카지노 게임 추천18을 향해 달려가는 카지노 게임 추천17, 나샤의 모습이 짧게 나온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추천18은 케네스의 제안을 거절하고는 18번이라 쓰인 버튼을 누른다. 폭발이 일어나는 모습을 카지노 게임 추천17과 나샤가 멀리서 황망히 바라본다.

이건 전형적인 영웅적 희생 장면이다. 그리고 이때 케네스가 하는 말은 마왕이 토벌당하기 직전 하는 "나와 손을 잡으면 세상의 반을 주겠다" 같은 터무니 없는 유혹에 가깝다.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의 영웅적 모습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때 반대로 그가 케네스의 손을 잡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아마도 이 가정 속의 '타락한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18번 버튼 대신 17번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카지노 게임 추천18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크리퍼에게 사람 하나가 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또 하나는 멀티플이라는 금기를 어긴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해야 하는 일, 이라고 적긴 했지만 이건 실은 영화가 해결해야 하는 일, 이기도 하다. 하필 후자를 이 장면에서 해소하겠다는 영화의 결정이 다소 의아하게 여겨지는데, 나는 영화가 어쨌거나 카지노 게임 추천17과 카지노 게임 추천18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어느 장면에서건 죽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달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카지노 게임 추천18이 죽으면서 영화는 두 가지 모두를 한 방에 해결했다. 그런데 실은 여기서 18번 대신 17번 버튼을 눌렀어도 그 고민은 똑같이 해결되는 것이다. 사람 한 명이 죽고, 멀티플 문제도 해결된다. 하지만 18은 그 대신 자기가 죽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 가설을 완전히 확실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해석할 경우 해당 장면의 연출이 다소 듬성등성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케네스 마샬이 "17번 버튼을 눌러"라는 말을 하며 유혹한다든가, 카메라가 버튼을 클로즈업 해서 보여준다든가, 카지노 게임 추천 18이 카지노 게임 추천17과 나샤가 달려오는 모습과 버튼을 번갈아 바라본다든가, 하는 장면 중 하나라도 나왔다면 당연히 이 장면은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을 텐데, 영화는 이 장면을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이 어리둥절한 장면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전개를 편하게 하기 위한 편의주의적 장면인 것일까? 장면의 긴장감과 박진감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는 얼렁뚱땅 멀티플 문제도 해결하고 한 인간을 희생하라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각본상 절묘한 일타쌍피 대목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데 내가 그걸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거나/혹은 제대로 연출되지 않은 장면인 것일까?




손석희의 〈질문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자막에 "〈미키17〉이 봉준호의 첫 번째 헐리우드 SF 영화"라는 말이 나온다. 〈설국열차〉를 생각하면 오류인 자막이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IMDB를 들어가 봐도 이 영화는 '한국/체코' 영화로 기재되어 있고 백지선 프로듀서 역시 "<설국열차는 미국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배우 조합(SAG) 소속 배우들과 계약을 하기 위해 SAG에 가입했어야만 했다"고 말하고 있다.

봉준호 본인도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이라고 알려져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과 '스토커'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할리우드에 진출한 3대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감독은 "두 분은 미국 제작사를 통해 연출하신 거고 나는 다른 케이스다. 한국 영화에 외국배우가 출연한 것 뿐이다.그동안 유럽이나 아시아의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많이 갔고, 이안 감독 처럼 성공적인 케이스도 있었으니 두 감독님도 그런 길을 걸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종종 벌어지곤 하는 오해와 다르게 〈설국열차〉는 봉준호의 첫 번째 헐리우드 작품도, 첫 번째 미국 작품도, 첫 번째 헐리우드 SF 영화도 아니고, 그냥 첫 번째 영어 SF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헐리우드 SF 영화가 맞다.

다만 같은 프로그램에서 손석희 씨가 "이번이 세 번째 SF영화"라고 언급하면서 〈괴물〉을 뺀 다른 세 영화만 언급했는데, 〈괴물〉은 SF영화가 맞다.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네 번째 SF영화다. 다소 의아한 대목이었는데 리서치를 안 하고 나온 말은 아닐 테고, 아마 한국인이 생각하는 'SF'라는 게 뭔지 짐작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SF영화 마니아들이 봉준호 감독 커리어의 절반을 차지하는 SF영화에 대해 대중에게 제대로 설명할 의무를 느껴야 하는 대목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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