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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an 05. 2025

어른의 카지노 게임

출근

카지노 게임



아침 아홉 시에 눈이 떠졌다. 좀이 쑤셔 누워있는 게 오히려 곤욕이었다.

'카지노 게임에 온종일 일한 보상으로 최대한 늦장을 부리다가 일어나고 싶었는데.'

남들 쉴 때 일한다고 억울하지 않지만, 카지노 게임에 일하는 건 상당한 문제다. 적어도 내게는. 카지노 게임는 특별하다. 빠르게 어둠이 찾아오는 계절, 새하얀 입김을 눈으로 관찰하고 미세한 탄내를 코로 감지할 때쯤 동네 로터리에는 카지노 게임트리가 생기고, 카페에서 캐럴이 나오기 시작한다. 지난 일 년 동안 내 일상이 어떠했는지 새삼 돌아보다가 시치미를 뚝 떼고 수없이 토해낸 짜증, 울분, 화를 못 본 척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열심히 살았으니 선물 좀 주세요’라며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려도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시즌이다.


우리나라는 국교를 정해놓지 않았지만, 합법적인 종교의 주요 행사를 국가 차원에서 축하한다.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은 일 년 중 내가 좋아하는 공휴일이기도 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절이 있는 동네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부처님 오신 날만 되면 절에 밥을 먹으러 갔다. 학교 급식 시간에 먹을 때는 그렇게 맛없던 나물 반찬이 절에만 가면 어쩜 그렇게 맛있어지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게다가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절편은 조청이 없어도 꿀떡꿀떡 넘어갔다. 절밥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말 대신 평화롭다는 말이 나오는 신기한 날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푸짐하게 쌓인 양푼 속 슴슴한 비빔밥에서 고즈넉하고 따뜻한 공기를 잘도 알아차렸다.


고요히 흘러가는 석가탄신일에 비해 카지노 게임는화려한 축제같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카지노 게임는 발레 공연 <호두까기 인형으로 시작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음악 <호두까기 인형에 맞춰 아름답게 춤을 추는 공주님과 왕자님은 카지노 게임 때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하고 특별한 주인공들이었다. <호두까기 인형 속 성탄절 파티와 <나 홀로 집에, <해리포터 시리즈, <러브 액츄얼리 등 동경하는 서양의 카지노 게임 문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덕분에 카지노 게임환상을품었고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우울한 날이면 방 불을 끈 뒤커다란 홀 케이크를 끌어안고영악하고 귀여운 케빈이나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호그와트 친구들을 만나러 떠난다. 매해 카지노 게임에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했고 암흑의 수험생 시기를 지나 성인이 돼서도 꼬박꼬박 혼자서 카지노 게임 발레 공연을 챙겨봤다.시골로 이사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생활시설은 대형 마트도 스타벅스도 아니고 카지노 게임에 <호두까기 인형를 하는 공연장이 없으면어쩌지걱정할 정도였다.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산타 할아버지는 이 무렵 가장 기다리는 손님이다. 내가 몇 살 때까지 산타 할아버지를 믿었더라. 꽤 머리가 크고 나서 까지 산타 할아버지를 굳게 믿었다. 내가 원하는 선물을 대가 없이 주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카지노 게임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 꾸러미를 보고 터져 나오는 기쁨과 안도는 앞으로도 경험해 보지 못할벅차오르는감정일 것이다.어쩌면 산타 할아버지를 굳게 믿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선물 포장지에 커다랗게 한글로 쓰인 내 이름을 보고'서양사람인 산타가 어째서 한글을,' 궁금했다가이건 엄마 글씨체인데’하고 알아차려 버렸지만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산타 할아버지에게 카지노 게임 행복을 빌었다.

‘이 아름다운 축제 분위기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게 해 주세요.’


부모님은 내게 한 달 전부터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카드를 쓰게 했다.

'안녕하세요 산타 할아버지. 저는 올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동생을 아주 잘 돌봤어요. 이번에는 옆으로 매는 가방인데 (그림으로 묘사하며) 이렇게 열리는 작은 보조 가방을 갖고 싶어요.'

갖고 싶은 선물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서로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영악한어린이였다. 2주 뒤 우연히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갔다가 냉장고 위에 놓여있던 카드를 발견했고 아빠에게 소리쳤다.

'아빠! 카드가 왜 여기 있어요? 아직 안 보냈어요?'

(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잘하는 편인) 아빠는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송되었나 보네. 다시 보내줄게.'


이제 나는 카지노 게임에도 출근해야 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버렸다. 산타의 존재를 믿는다고 조잘거려도 남들이 비웃을 나이이긴 하다. 그래도 일 년 중 제일 좋아하는 날에 타인의 행복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면 산타 할아버지 장화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싶지만 따뜻한 미소 가득한 얼굴들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은 유독 어두웠다.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을 기대했건만 이례적으로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조용히 햄버거를 씹어 삼키고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어른의 카지노 게임는 삶의 연장선일 뿐인가 보다.


'벌써 자정이네.'

길고긴 2024년 카지노 게임가 이렇게 끝났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마지못해 거실로 내려왔을 땐 겨우 아홉 시였다. 전날 먹고 치우지도 않은 햄버거 봉투가 눈에 거슬렸다. 어쩐지 전날의 슬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불현듯 오늘을 카지노 게임로 치자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자.

캐럴을 신나게 틀어놓고 달리는 거야. 아직 카지노 게임를 치우지 않았을 테니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뱅쇼도 마시고.'


그렇게 충동적으로 여행을 구매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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