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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Mar 21. 2025

고양이를 기르고 생명카지노 게임을 알았다.

나는 카지노 게임이 뭔지 몰랐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심리검사를 해보면 카지노 게임이 아주 많은 사람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내 주변 사람들은 카지노 게임받는다고 느끼는데 그리고 내 카지노 게임을 갈구하는데 나는 내가 카지노 게임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일말의 불안함으로 온전한 카지노 게임이 안 됐다. 가짜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 마음이 알고 있다.


'언제 뒤통수 칠지 모르지.'

'언제 나를 배신할지 모르지.'

'흥, 너도 니 이기심을 위해서 나를 배신하겠지.'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온전히 누구를 카지노 게임하기 어려웠다.


그저 내 앞에서 나에게 공격성이 없고 무해한 사람만을 찾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있기는 있다. 그런데 내 가족이, 내가 만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음에도 카지노 게임해야 할 때는 어떡할까.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듬고 갈고닦았다. 그러다 보니 얼추 흉내는 내게 되었다. 나를 만나는 사람 중 모난 사람과도 그럭저럭 삶을 영위하게 됐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안다. 나는 진정으로 그들을 카지노 게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카지노 게임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흉내라도 내야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옳지 않은 가정환경이 다른 사람에게 과도하게 맞춰주는 가짜 카지노 게임으로 발달된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야 했으니 미움받지 않을 가짜 카지노 게임 말이다.


진짜 카지노 게임이 안 됐다는 것이다.


진짜 카지노 게임이 왜 중요할까.


내가 해보니까 말이다. 근원적 스트레스가 덜하다.


서론이 길었는데, 나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유기 고양이를 애기 때부터 키웠다. 이 녀석은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고만 치고 다닌다. 내가 똥을 치워줘야 하고, 털을 치워줘야 한다. 그러면 그 대가로 부들부들한 털이라도 만지게 해 주면 좋으련만 절대로 못 만지게 한다.


내가 원하는 카지노 게임을 주지 않는다. 기브엔 테이크의 관계로 보면 불균형적인 관계다.


그런데 말이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나에게 해주는 게 있거나 말거나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키우니 말이다.


희한하게도 지나가는 풀 한 포기, 동네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눈에 보인다. 그들의 생명이 보이고 그들이 왜 거기 있는지 궁금하다.


말을 걸게 된다.


나는 장애인학교에 강사로 수업을 한다. 마찬가지로 이아이들을 만날 때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들의 삐뚤어진 모습을 보아도 밉지 않다. 아마 예전엔 미웠을 것이다. 과도하게 참았을 것이다. 수틀리면 내 안경을 뺐고, 때리는 녀석도 있지만 단호하게 가르칠 뿐 더 이상 밉지가 않다.


누구를 잠깐 미워할 일이 있다가도 그들을 생명으로 보게된다. 그러면 금방 또 그 생명이 보인다.


그 생명이 귀해서... 그 생명이 이쁘게 컸으면 좋겠어서...


이것은 사회복지상담과 에서 누구를 만날 때도 그렇다. 그들의 잘못과 생명존중을 분리해서 생각하게 된다.


억지로 하는 카지노 게임을 할 때는 억지로 맞춰주고 참으니 스트레스가 많았다.


지금은 나의 생명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거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내가 소중한 생명이니 나를 위한 세팅을 먼저 한다.

그러니 나를 보호할 줄도 안다.


그리고 보이는 생명들이 그저 다 곱다. 이쁘다.


고양이...고양이를 키우며 그런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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