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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Mar 06. 2025

나를 부르는 이름

부모님은 서촌의 한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작은 평수였지만 두 사람이 살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무엇보다창밖으로는 아주 큰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집을 보러 갔던 시점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창문을 열자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마주하고 두 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집을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곧장 계약을 마치고 엄마는 아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둘이 아닌 언젠가 태어날 아이와 함께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고 그랬다. 나를 마주하고서는 자신들의 행복이자 축복이라는 말을 여러 번, 아니 수십 번그 이상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함께 들려왔고 따라 미소를 짓곤 했다.

아빠는 이따금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됐던 순간을 들려주곤 했다. 시작은 항상 같았다. 내게 첫 만남 이야기를 들어보겠니? 하고 묻고서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지만싫지는 않았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두 분의 첫 만남은안국역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골목가에 위치하고 있는 특성 때문에무심코 지나가다 찾기란 어려운 장소였다. 아빠는 그런 숨어있는 카페들을 찾아다니길 좋아했던 탓에 이곳을 찾고 아주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했다. 흰색 페인트를 바른 벽면엔 작은 글씨로 커피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입구의 투명창으로는 내부가 훤히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옆문을 통해 나가면 오래전 누군가 뛰어놓았을 작은 마당엔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와 작은 탁자가 몇 개가놓여 있다.그곳을 곧장 지나쳐가면 조금 더 큰 공간이 나오는데 천장은 이곳이 한옥집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서까래가 보였다. 일반 집이었던 자리를나눠 일부분을 카페로 활용하는 공간은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벽면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투명한 창으로 되어 있어 답답해 보이지 않고넓어 보였다. 커피를 만드는 곳이 앉은자리에서도 보였다.무엇보다책을 읽거나 선곡해 주는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엔 충분한 곳이라 아빠는 카페를 자주 찾아갔다. 그날도 아빠는 평소와 같이 카페를 찾았다. 주인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음료를 주문하는 사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엔 없던 일이라 우산을 챙기지 못한 탓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주인은 나갈 때까지 비가 멈추지 않으면 우산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비를 피해 들어오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내게 첫눈에 반한다는 게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 순간이라고 그랬다. 엄마는 부끄러운 듯 별말을 다한다고 했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읽으려고 가져왔던 책도 읽지 못한 채 힐끔힐끔 엄마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봤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비가 내려 눈앞에 보이던 카페에 들어왔지만 멈추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말을 했다. 이 부분을 전하며 아빠는 내용을 들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카페가 조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듣게 된 것이니 오해하면 안 된다고 말했고 엄마는 그렇게 자기가 좋았냐며 통화내용을 몰래 들을 정도였냐고 말하면 아빠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짓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그래서 더 좋았다. 나를 만나기 전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 새하얀 얼굴 오버사이즈 재킷을 입고검은색 운동화를 신었다. 엄마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도 잘 안 보였을 텐데 뭘 보고 첫눈에 반했냐고 물으면 아빠는 카페로 들어왔을 때 고개를 들었던 그 순간 마주했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었다고. 아빠는 가방에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자신의 연락처를 적었다. 그러고서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종이를 구겨버렸다. 직접 찾아가 핸드폰을 내밀어 볼까 생각도 했다. 이런 말이 실례일지 모르지만 첫눈에 반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떨지 하고 준비도 했지만 비를 피해 쉬고 싶은 사람에게 그러는 건 실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끝으로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엄마는 아빠의 말뒤에 네 아빠는 생각이 너무 많아. 요즘도 그래.

진동벨이 울리자 엄마는 통화를 종료했고 음료를 받아왔다. 커피를 마시며 바깥을 바라보았지만 비는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가까이 다가가 바깥을바라보다 자리로 돌아오는 듯하더니 다시 일어나 주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지만 알 수 없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주인은 손으로 내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말은 그랬다. 우산이 하나밖에 없고저분도 곧 갈 시간이 되었다며 역까지 같이 쓰고 가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고.그러니 실례가 안 된다면 역까지만 같이 쓸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역까지는 도보로 십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근처에 우산을 살 수 있는 다른 곳은 없었다. 아빠는 곧장 메모장과 볼펜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주인에게 우산을 받아 카페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우산은 두 사람이 쓰기에도 충분한 크기였다.조용한 골목길은 비가 오던 탓에 더욱 조용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될 것 같아 어쩌다 이 골목까지 들어온 것이냐며 엄마에게 물었다. 시끄러운 소음이 싫어 조용한 곳을 찾아 걷다 보니 골목까지 들어오게 됐다고. 비가 내렸고 때마침 카페가 보여 들어왔다는 말을 하며 웃음을 지었다. 아빠는 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묻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해서 웃더니 이 상황이 신기하다며 자신이 며칠 전 꿈을 꾸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상자를 뒤집어쓴 채로 수많은 사람 사이를 뛰어 지나갔는데 깨어나서 무슨 말도 안 되는 꿈인가 했더니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 우산을 쓰고 가려고 그랬나 싶다 말하고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말도 안 되는 꿈은 아닌 것 같다고. 아빠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걷다 보니 지하철 역이 나타났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서로 다른 노선이었던 탓에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화면에는 엄마와 아빠가 타야 할 지하철 모두 곧 도착이라고 나타났다. 각자의 위치에서 어색한 인사를 한번 하고 뒤돌아섰다. 곧이어 지하철이 멈췄고 많은 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빠는 뒤돌아 한번 더 엄마를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출입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출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전히 아빠는 서있었다. 아쉬운 마음 때문이었다. 뒤돌아 엄마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을 때 아빠는 깜짝 놀랐다고 그랬다. 아빠는 말을 하면서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늘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 역시 그 자리에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에 뒤돌아본 엄마 역시 놀란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두 분은 이 부분에서 크게 웃곤 했다.

왜 타지 않았냐고 묻자 엄마는 모르겠어요. 라며 답했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말을 듣고 무슨 용기가 난 것인지 배고프지 않냐며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그랬다.

두 분은 그날을 첫 데이트라고 정했다. 밥을 먹으며 아빠는 광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왔고 엄마 역시 대전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타지에서 혼자서 지낸다는 공통점이 두 분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자연스레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다. 아빠는 엄마를 데려다주는 길가에서 용기 내 말했다. 나랑 사귀자.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는 아빠가 웃기고 귀엽다고 말했다. 수락을 했고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내며평생의 사랑을 약속했고 결혼을 했다.엄마는 나를 쓰다듬으며 네 아빠가 요즘은 나보다 더 널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아빠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건 당신이 일 번이고 그다음이 우리 아이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속삭였다. 엄마는 질투가 많아. 이해해야 해. 그럼 엄마는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냐며 아빠를 다그치지만 아빠는 내게 찡긋 미소를 지으며 빨래를 널겠다면서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러자 엄마는 네 아빠는 참 바보 같은 사람이야. 엄마밖에 모르고 사람이었는데 그 안에 이제 널 포함하고 있으니. 요즘은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해.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고 잘 살고 싶게 하고 싶다면서. 엄마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해. 미래는 알 수 없잖아 그래서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서툴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일들이 네게 상처나 힘듦으로 다가오지는 않을까 싶거든. 엄마도많이 부족하겠지만 열심히 노력해 볼게.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두 분을 번갈아 바라봤다.어쩌면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그래서 겁이 나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는 이들이 날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두렵다가도 기분이 좋아졌다. 빨래를 다 널고 돌아온 아빠는 엄마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게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고 이내 딸기를 사 와달라며 말했다. 아빠는 곧장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닫힌 문을 함께 바라보다 이내 열린 창문으로 시선이 향했다. 바람이 불었고 흰색 레이스 커튼이 흔들렸다. 사이로 초록색 잎들이 보였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곡을 들려주고 싶다며 노래를 켰다. 잠시 후 노랫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기분이 좋아지는 곡이었다. 거실에 놓인 전신거울을 바라보고 요즘 살이 많이 찐 것 같아 걱정이라 말하면서도 건강한 게 최고라며 괜찮아하고 웃는 소리에따라 웃음이 났다. 말을 하고 나서는 안 되겠다며 우리 함께 운동을 하자고 흥이 나는 곡으로 노래를 바꾸었다. 거실의 중앙에 서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고 엄마를 따라 나도 몸을 흔들었다. 우리는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취하고 움직였다. 딸기를 사고 들어오던 아빠는 현관문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뭐 하고 있는 거야 라며 웃더니 곧장 신발을 벗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춤은 내가 자신이 있지 라는 말을 하며 몸을 흔들었다. 손에는 딸기가 담긴 검은 봉지가 함께 있었다. 몸을 흔들 때마다 봉지의 딸기도 같이 움직였다. 달콤하고 새콤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만 춤추고 싶다 말하고 멈추었다. 그러자 엄마도 멈췄고 아빠도 멈췄다.

식탁에 앉아 딸기를 기다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딸기를 씻었다. 꼭지를 자르고 예쁜 접시를 찾았다. 엄마는 서랍 가장 위칸 오른쪽에 있다며 아빠에게 알려주었고 접시를 찾아 딸기를 가지런히 올려 담았다.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지 않겠냐며 말을 하면서. 처음 딸기를 먹었을 때 그 맛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지만 표현해 보자면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건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지 않다. 뿐이라 모든 표현은 대부분 같은 것 같다.처음 맛본 이후로 종종 엄마에게 딸기를 먹고 싶다 말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 딸기를 사러 다녀온다. 딸기 두팩을사서 한팩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팩을 꺼내 먹었지만 더 먹고 싶다는 말에 남은 한팩을 마저 꺼내 씻고 접시 위에 다시 올리자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말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잘 먹는 게 보기 좋다 말했고 엄마도 그러네.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두팩이모두 사라지자 아빠는 더 사 올까? 하고 물었지만 엄마도 나도 괜찮은 것 같았다. 곧장 소파에 누어 쉬고 싶어졌다. 아빠는 뒷정리를 했고 우리는 소파로 향했다. 정리가 끝나자 우리의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앉는다. 흥이 나던 곡은 어느새 다시 연주곡으로 바뀌어 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는 눈을 깜박이며 졸리다는 말을 했고 아빠는 자신의 무릎에 엄마의 머리를 가져다 댔다. 서서히 눈을 감았다. 아빠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랑한다 말했다. 물론 나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앉은 자세로 우리를 지켜보다 고개를 숙이고 잠에 빠져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던 나는 흘러나오는 연주곡 소리에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에 집중했다.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소리들이 참 많았다.

때로는 놀라고 신기함이 더해진다. 낯설게 느껴지던 것들 사이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를 조심스레 깨워 침대로 가자고 말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잘 자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에스르르 눈이 감긴다. 사랑한다는 말, 잘 자라는 말, 뒤로 또 한 번의 밤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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