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산골엔 지난 이틀간 눈이 쏟아졌다. 영상 기온이라 바닥에 쌓이진 않고 그저 쏟아지기만 했다. 채색은 충분하여 허공도 숲도 하얀 크레파스같은 눈으로 두텁게 칠해졌다. 눈앞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날씨 변화가드문 일은 아닌데 무료 카지노 게임 중순의 푸짐한 눈은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전만 해도 겨울잠에서 깨어난 숲의 여린 초록과 잔잔한 봄꽃들이곱게 어른대던 세상이었다. 집 마당엔노란 양지꽃과 꽃다지가 포근한햇살을 모으고,가지를한껏펼친 매화나무엔 뽀얀꽃송이가 소복이맺혀 있었다.마을 길가에늘어선 벚나무들도막 나들이를 앞둔 것처럼 꽃망울이부풀고 있었다. 가벼운 차림으로마을 길을 걸어 산마루까지 다녀오는 동안 바람은 선선했다. 숲을 가만가만 일으키던그 바람은저물녘이되자돌연모습을 바꾸었다. 음울한 소리로 휙휙 숲을내달리는가 하면 한순간 세상을 휘감아 쥐고는곤두박질쳤다. 구름이 득달같이몰려오고 어둑해진 허공에선 빗방울이 요란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밤새눈으로 바뀌었다.다음날 아침날이 밝자 밖엔 턱 하니 하얀 눈풍경이 도착해 있었다.마치 장면 전환을 위해 연출한 무대장치 같았다.
"아무것도할수 없는 기분이야."
나는 함께 창 밖을 보고 있던 동생에게 말했다.
"안 하면 되지."
동생이 말했다.아름다운 풍경 앞에서의욕이 사라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생물의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한 시스템을마주한 무력감인것일까.싫은 건 아니었다.올봄엔 유난히 의욕이 앞섰다. 추운 고장이라 아직 작물 파종은 일렀지만 일찌감치 길가 묵은 풀더미를 정리하고, 부엽토를 긁어와 밭 만드는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해가 있는동안은 거의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따뜻해지면 또 저절로 움직이게 될걸."
동생이이어 말했다.
"맞아. 그럴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마음 낼 필요는 없었다. 때가 되면 깨어나는 생물들처럼 우리도 그럴 테지.
눈 오는 이틀째 아침엔커다란 꽃잎처럼 가만가만 떨어지는 눈송이가 유난히 예뻤다.잠시 나가 산마루까지 눈을 맞고 돌아왔다. 새잎과 꽃들이 눈얼음을 이고 있었다. 묵은 갈대숲도 묵직한 눈에 엎드리고 새들은이따금신호음을 내며 허공을 눈뭉치처럼 날아다녔다. 무력감은 사라지고어디 멀리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처음 당도한 낯선 곳에서 내 몸에 기억된 지난 시간들이 아득해지는 것도 같았다. 뜻밖에 쏟아지는 눈처럼 알 수 없는 삶의 기류는 두려우면서도 때로 아름다워서 어쩐지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