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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영 Jul 09. 2019

젊은 카지노 게임를 회상하며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파이팅을 넘어 빠이팅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노오력만 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믿었다. 직장에서는 날이 갈수록 인정받았고 내가 이루는 성과와 비례해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해보니 다 되는 거였구나.'

'나도 하는데 이 정도면 다 할 수 있겠는걸.'


내 무의식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작은 생각의 씨앗 하나가 떨어졌고 뿌리를 내려갔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은 어느새 뿌리가 튼튼한 하나의 가치관이 되었고 이후 무수한 문제를 일으켰다.예를 들어 보고서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는 직장동료를 향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5시까지 넘기기로 하지 않았나요?"

(이게 이리도 오래 걸릴 일인가? 모르면 진작 물어보지)


"왜 상황 공유를 안 하는 거죠?"

(일이 중간에 생겨 시간 안에 못할 것 같다고 미리 보고하고 언제까지 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나? 답답하게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이 보고서에 아침에 게시판에 공유했던 자료 참고해서 첨부파일로 함께 올려주세요."

(아침에 보낸 자료 열어보지도 않았음이 분명하군. 자료를 찾아서 첨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진 자료 첨부만 하라는 데도 왜 못하는 걸까?)


카지노 게임


마감기한을 어기고 약속했던 일들을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더 문제는 그런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였다. 내 사고의 틀 안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가는 보고서는 시간 엄수는 필수다. 그러나 당시의 내 문제는 내가 스스로 세워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한없이 냉정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반드시 꼬박꼬박 존대하며 토끼몰이하듯 사람들을 몰았다. 어느새 나는 무자비하고 냉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거기에서 파생된 분별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윗선에서는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고 인정받았지만, 아랫선에서는 말하기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나와 너의 분리 의식이 생기며 맑은 연못에 떠있는 한 방울의 기름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내가 세운 기준은 너무나도 엄격했고 그 기준에 나도 미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를 엄청나게 질책했다는 것이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온몸이 아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일까? 그 안에는 나에 대한 불신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도 하는데...

이 생각 뒤에는 '이렇게 부족하고 능력없는 나도 하는데 저 사람이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야. 아니면 관심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거다.'라는 생각의 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는 사람의 가치라고 생각했고, 일이 잘못되면 내가 잘못되는 것 마냥 괴로워했다. 타인에게 가혹한 만큼 나에게는 더 가혹했던 것 같다. 아파도 쉴 줄을 몰라 나중에는 몸이 아픈 건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내 마음은 어땠을까?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는데도 망가진 줄도 모른 채 스스로 더 노력하라고 몰아붙였다.


그때의 나는 젊은 카지노 게임였다. 나는 잘 안다는 착각, 타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상황을 내가 다 안다는 지레짐작과 오만함이 내가 걸린 병이었다. 패기 넘쳤던 젊은 카지노 게임는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히며 세상에는 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 이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생각과 의견 그리고 그로 인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는 결코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에 겸손해야 하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내 마음의 소리, 그리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부터 귀를 기울였다.


지레짐작하고 서둘러 판단해 버렸던 것은 결국 타인을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부족해서였다. 내 안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되면서 다른 카지노 게임의 부족함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의지와 성실한 노력을 인정하면서 다른 카지노 게임이 보였고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한 점이 있는 만큼 다른 카지노 게임보다 잘하는 것이 있고, 다른 카지노 게임이 부족한 것이 있는 만큼 나 역시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플러스 마이너스 0이 되며 완전해 지고 그런 것이 인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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