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건우 Apr 19. 202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멜 깁슨 감독 작품. 수 많은 종교(기독교) 영화 가운데 가장 사실성을 핍진하게 다룬 영화로 평가받는다. 2천 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과정을 기록했다면 이 영화처럼 참혹하고 잔혹한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멜 깁슨 감독은 성경의 내용을 철저하게 고증해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려 했다. 의상은 기본이고, 유대 총독과 로마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아람어를 쓰면서 그 시대에 서로 다른 언어 즉 지배자의 언어(라틴어)와 피지배자의 언어(아람어)가 어떻게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소통의 부재를 확인한다.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다. 예수를 죽이려는 자들은 유대 제사장들이고, 이들은 예수가 성전을 모독하고 대중을 선동해 불안을 조성하는 죄를 지었다고 총독에게 고발한다.

이후 벌어지는 사건은 성경(신약)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거니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이후 사흘만에 부활하는 과정까지를 그린 영화다. 다만 지금까지 다른 종교 영화에서는 보여준 적 없는 예수의 고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이 참혹한 장면들을 두고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멜 깁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예수의 죽음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즉, 이 영화는 멜 깁슨의 고해성사와 같고, 종교적 간증과 같은 영화다. 예수의 고난을 많은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예수가 원죄를 지은 인간을 위해 대신 죽음을 맞이한 다음 다시 부활해 죄 사함을 했다는 종교적 믿음과 신념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에서 예수가 로마군에게 당하는 수난은 그가 지었다는 죄(물론 예수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로마 병사의 채찍질로 온몸이 찢기고, 가시면류관 가시가 머리를 파고 들고, 채찍 끝에 달린 칼날이 살에 박히고, 방망이로 구타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리면서 손바닥에 커다란 쇠못이 뚫고 지나가고, 팔이 부러지고, 옆구리에는 로마 병사가 긴 창으로 찔러 심장을 관통하는 커다란 상처가 나는 등 예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감정이 둔한 사람도 이 장면들은 똑바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고 잔혹한 장면들이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의 고문 장면도 몹시 보기 힘든데, 예수가 당하는 고문은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직접 육체를 타격하는 물리적 충격이 강하다.

이렇게 예수가 육체적 고문으로 난도질 당하는 장면을 무려 두 시간이나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의 고난은 모두 인간이 지은 원죄를 대속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감독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하면, 예수의 고난을 통해 인류가 미움과 증오, 반목, 갈등을 풀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드러낸 걸로 볼 수 있다.

기독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고 성경의 내용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라면, 예수가 실재 존재했고, 예수가 유대 제사장들의 고발과 열두 제자 가운데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에게 잡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믿는다. 물론 예수의 부활까지.

하지만 나같은 무신론자나 보다 진보적인 종교학자들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이해한다. 가장 알기 쉬운 신화가 바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다. 5천년 전, 백두산에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데, 비, 바람, 구름을 관장하는 신과 함께 내려왔고,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으며 동굴에서 100일을 지내 마침내 인간이 되었다는 내용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이때 '단군'이 예수처럼 실재한 '인간'이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학자 백남운은 '단군신화'를 정치경제학 이론으로 해석하면서, 5천년 전 한반도에 살던 부족들이 통합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천년 전, 예루살렘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청년(예수)이 어떤 경로로 지배자인 로마 황제에게 굴종하는 유대교에 반발하고, 점령군인 로마군에 저항하려는 조직을 만들어 싸우려 하자, 이를 위험하게 여긴 유대교 제사장들이 예수의 조직 내부에 있는 한 사람(유다)을 매수해 예수를 고발하고, 체포하도록 만든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종교'의 외피가 덧씌워진 과정은 유대교가 물리적 한계-2천 년 이전의 시대 상황과 달라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변화였으며, 실제 유대교가 믿는 '구약'과 달리 '신약'은 예수가 죽고 4백 년이 지나서 여러 명의 주교들에 의해 새롭게 편집된 내용이다.

즉, 멜 깁슨 감독이 만든 예수의 고난은, 예수가 죽고 무려 4백 년이 지난 다음, 수백 편의 서로 다른 편지와 기록들을 검토한 주교들이 자기 조직(기독교)의 홍보를 위해 드라마틱하게 편집한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고 감명과 감동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보면, 이 영화는 한 편의 포르노와 같다. 잔혹한 고문을 반복하며 보여주는 장면과 과정도 그렇고, 예수가 당하는 고문을 보면서 '내 죄를 사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한다'는 감정을 유발하는 종교적 신념의 과잉도 같은 해석이다.

즉, 무언가 확신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그 확신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예술작품은 하나의 선전도구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자본주의가 놀라운 건, 대중을 세뇌하는 과정이 매우 교묘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주의가 선전선동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도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그들의 목적과 목표가 너무 직접적이고 거칠며 노골적이기 때문에 대중이 반감을 갖기 때문이다.

멜 깁슨이 기독교 또는 예수의 삶을 통한 종교적 구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 했다면, 이런 잔혹한 포르노 폭력물을 만들 게 아니라, 훨씬 세련된 형식과 연출로 예수의 고난이 물리적 고통보다 오히려 더 깊은 정신적 고통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