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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덕 Feb 14. 2025

카지노 게임 사이트서 만난 사람들 #8

재외동포 Back to Origin

참고: 이 글은 2020년도에 쓰기 시작하여 잠시 묵혀두었다가, 2025년에 완성한 글입니다.


Where Are You From?


"사장님 고향이 어디세요?"

"캘리포니아입니다."

"우와. 역시 그런것 같았어요. 그럼 캘리포니아 어디?"

"샌프란시스 전주입니다. 하하, 캘리포니아는 언제나 제 마음 속 고향이죠. 햇볕 쨍쨍하고 여유로운 도시"

"느린 말투 때문에 제가 외국에 오래 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인줄 아시더라구요. ㅎ 하지만 제가 태어난곳은 전라북도 전주 그리고 익산이라는 도시에서 초중고를 다녔습니다."


가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방문한 손님이나 처음 만난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다소느린 말투와다양한 외국 생활 경험을 추측 삼아 내게 고향이 외국인지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은 편하고 가볍게 얘기하지만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창업 하기 전)에 진지하게 미국 이민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 있다. 회사에 두 번의 사표를 내며 사회생활을 해보기도 했고,경쟁이 심하고, 스트레스 가득한사회에서 내가 더 이상 행복하게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들도 북유럽과 같은 여유있고 복지있는 사회를 동경하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헬조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태원 해방촌,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같지 않은 이국적인 동네

헬조선이라며 한국을 떠나 미국이민을 꿈꿨던 건축학도,미스터카지노 게임 사이트로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2007-8년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외국에 사는 기분을 내고싶어 선택한게 이태원동, 한남동이었다.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잠시 교환학생을 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돌아 와 늦은 졸업을 했다.

2014년부터는 이태원, 한남동은 핫플레이스들이 가득한 동네가 되어 예전의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홍대, 강남을 잇는 새로운 서울 대표상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태원 경리단은 이미 유명해져 한국인들이 가득하고, 주말 밤 이태원 클럽 앞 길거리에 호객꾼들을 보며 나를 포함한 예전의 이태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였다. 이태원 한남동이 주무대였던 외국인들은 경리단, 그리고 해방촌으로 이동했다. 그나마 예전의 이태원분위기를 간직한 동네가경리단, 해방촌이어서 그런걸까 나도 해방촌에 자주 놀러가게 되었고, 2015년 세탁소카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창업을 하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왜 오는가?

예전에 이태원은 외국인동네로 인식되었다. 용산기지에 있던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영어소통이 가능한 외국음식점들과 시설들이 많이 있었다. 미군부대 관련 인원들 뿐만 아니라 영어소통이 가능한 지역 그리고 외국인 친구들의 거주지역이다보니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서 일을 하는 외국인들도 자연스럽게 모여살게 된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이 지역은 서울의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다소 노후화된 상태지만 짧게 살다가 다시 나가는 외국인들이 많았으니 집주인들은 개선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들이 많았다. 그리고 남산의 고도제한과 미군부대의 보안문제 때문인지 이태원, 경리단, 해방촌의 대규모 고층 주택개발은 어려웠으니 꽤 오랜세월 예전의 동네모습을 지닌 채 지내왔던 것이다.


이런 동네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시작하며 중장기간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들부터한국으로 단기가 여행오는 외국인들까지 많이 만나게 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사장님은 떠나고 싶었던)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왜 여행왔나요?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에 커피한잔과 함께 자연스러운 토크가 시작된다.


여행중이니?

Are you traveling now?


#재즈를 좋아하는 미국 할머니

미국 LA에서 온 가족이 있었다.

세탁기 3개와 건조기3개를 다 차지하며 세탁을 돌리고 자리에 앉아

커피와 디저트 한 가득 시키신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가게에 항상 틀어놓는 재즈를 따라 부르며 그루브를 탄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에 이렇게 자연스러운 그루브를 타시는 분은 처음이었고,

나 또한 그런 이국적인 분위기에 즐거워졌다.

편안한 분위기속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여행 온 이유를 물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전쟁 후 미군아버지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게 된 혼혈소녀.

미국으로 입양되어 떠나게 되었고,

이제는 손자 손녀가 생긴 시점(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어렸을 때 떠나온 지 50년은 넘은 듯 하다.)에죽기 전 버킷리스트였던 고향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방문해보고 싶어 가족과 함께 드디어 여행으로 첫 방문하게되었다며 즐거워하셨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시다고 한다.


#셀프세탁을 하러 오신 미국 할아버지

셀프 세탁서비스를 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20-30대가 99%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끔 동네 아주머니가 이불을 세탁하러 오셔도 절대 아저씨가 오는 경우도 없었다.

어느 날 가게 전화로 할아버지가 전화를 주셨다.

셀프 세탁이 가능한지 물었고, 위치에 대한 안내도 요청했다.

택시가 가게 앞에 세워졌고, 백발의 할아버지가 택시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왔다.

세탁기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매장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로 안내했다.

커피 한잔과 함께 어떻게 세탁을 하러 오시게 되었는지 물었다.


60-70년대 서울대 의대를 다녔고,미국으로 의사 인턴에 갔다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자리 잡으셨다고 한다. 이제는 은퇴하시고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러 서울에 왔다가 세탁을 하러 오셨다고 한다.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에 미국이민자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나를 미스터Lee 라고 부르셨다. 오히려 그동안 다른 이민자분들한테 들은 얘기와 다르게 이민자의 삶에 대한 어려움은 어느정도는 감수해야하며 그 정도도 감수 못할거면 아무일도 못한다며 당연한 얘기라고 하셨다. 대신 미국은 넓기 때문에 사는 곳을 잘 정해야 한다고 했다. 동양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산다면 자신이 의사여도 야채가게 중국인사장, 편의점 한국인 사장으로 봤을것이다. 그런데 백인 부유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사는 곳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살다보니, 그 지역의 꼬마들은 동양인들을 보면 한국인 닥터킴 이라고 부른단다.


그러면서

"우리 미스터Lee도 미국으로 와서 자리를 잡으면 좋을 것 같다. 세탁사업도 좋지만 더 크고 좋은 사업을 해야한다.

그리고 소개해주고 싶은 좋은 처자가 있다. 앨라바마의 현대차 공장장 딸이 있는데 소개한번 받아 볼텨? "


처음 본 낯선 고국의 젊은이를 좋게 봐주시고, 미래에 대한 좋은 덕담과 소개팅도 주선해주신다고 하니 너무 감사했다. 같이 사진 한 장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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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손님으로 나타나서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던져주고 가신다.

천사가 다녀 간 듯한.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사장님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손님들과 얘기 나누며 대한민국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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