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년차 미만 경력직의 육아휴직 선언 당일
일부러 30분 일찍 출근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께 말씀드리기 위해…
오늘은 육아휴직을 팀장님께 말하는 날이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빨리 집을 나섰고, 설레고도 무거운 이중적인 마음으로 회사를 향했다. 회사 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팀장님 앞에 서기 전까지 여러 생각과 잡념들이 오갔다. ‘육아휴직을 쓰면 뭐라고 생각할까?’, ‘그래도 날 믿고 뽑아주셨는데…’, ‘이제 1년도 채 안 됐는데 휴직을 쓰는 게 맞을까?’ 이미 마음 속에 답은 정한 다음이었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온갖 잡념들이 내 생각과 판단을 뒤흔드는 법이다. 이곳으로 이직을 결심했을 때도 똑같은 떨림과 감정이 오갔으니까. 난 이미 이런 통보와 알림에 한차례 익숙해진 터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출근하자 마자 가방과 옷을 던져 놓고, 홀로 휴대폰을 보고 계신 팀장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팀장님은 흠칫 놀라며 나를 곁눈질이 아닌 온몸을 돌려 물어보신다. “응? 갑자기? 무슨 일 있어? 뭐야.. 뭔데…” 팀장님은 많이 놀라셨다. 그리고 대충 눈치채셨을 터이다. 그게 이직이든, 퇴사든, 휴직이든 관계없이 나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을 것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생활 25년, 팀장님의 노련한 대응 DNA는 호흡을 가라앉히고 다시 객관적이고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그래, 어디서 얘기할까?“ 나는 답했다. ”여기 회의실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회의실에 앉자 마자,
“팀장님, 저… 휴직을 좀 쓸까 합니다. 육아휴직이요.” 팀장님은 입가에는 미소, 눈에는 원망과 실망이 가득한 채 나를 응시했다. “왜? 갑자기? 뭐, 왜 육아휴직이야… 와이프 복직하니?” 나는 말했다. “네. 그런 것도 있고 저도 아이 돌보면서 케어를 좀 할까 해서요.“ 사실 디테일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휴직 이후의 내 삶이 어떻게 될 지는 사실 팀장님의 관심사는 아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 이후의 삶을 물어보는 건, 내가 말한 이 휴직을 팀장님 선에서 막을 수 있을지, 혹은 나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팀장님이 다시 입을 떼신다. ”결정에 번복이 가능한건가? 아니면 확고한 거니?“ 난 속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말씀드렸다. ”변함 없습니다.“ 팀장님은 그제서야 ”알았다“며, 그 다음을 생각하시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어떡하냐… 너 이제 막 제대로 일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인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하소연이 계속 된다.
“널 회사의 핵심인재로 키우려고 안그래도 하던 차인데… 너 이번 인사평가도 얼마나 잘 줬는지 아니… 너 이렇게 가면 나중에 돌아올 때 얼마나 문제될 수 있는지 알지?” 일종의 협박일 수도 있고, 나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실망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려보려는 일련의 하소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이미 휴직을 선언했고, 팀장은 알아버렸고,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다만 공식적으로 회사에 알림이 간 건 아니다. 정식 휴직 신청은 인사팀에 통보될 때부터 본격 시작되는 거니까.
그래 되돌이킬 수 없다. 앞만 보자
무거운 발걸음? 보다 가볍고도 무직한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등지고 나왔다. 팀원들은 여느 때처럼 아침부터 팀장님과 회의하는 내 모습을 보고, “오늘 뭐 무슨 보고 있어요?” 라며 눈치를 본다. 나는 얘기했다. ”아뇨, 그냥 팀장님하고 면담했어요“ 팀원들은 안도의 눈빛으로, 그럼 그렇지… 라며 각자 자기 모니터를 다시 응시한다. 별일 없겠지, 아무 것도 아니겠지. 그렇게 지나갔다. 팀장님께 말하고 약 2시간 후, 팀장님은 팀의 차석들을 불렀다. 말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휴직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리기 위함임을…
to-be-continued.
* 대기업 육아휴직을 쓰는 30대 남자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