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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Mar 19. 2025

무료 카지노 게임 모두 죽는데, 어째서 서로를 힘들게 해야할까?

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여성의 날이 지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마침내 세 번째 주제에 대한 사빈의 답변이 메일함에 도착했다. 워드문서로 정리된 긴 글을 첨부한 짤막한 편지. 나는 여전히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지쳐 곯아떨어지길 반복하는 와중이었지만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문서파일을 열었다. 집 보수에 더해 이사를 하느라 노트북작업은 고사하고 노트북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빈의 글을 읽으며 지금 내 상황에 대한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료 카지노 게임봄인사 (c) Sabine
친애하는 Moon,
이번엔 글이 좀 길어졌구나. 하지만 마음이 가득 차 있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단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주고받는 이 글들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일부라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따뜻한 봄 인사를 전하며,
Sabine


유품정리가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집 보수는 이사로 이어져 두 달을 넘기고도 끝나지 않았고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계약을 맺은 작업자들과의 약속된 날짜, 내가 하지 않으면 그대로 쌓여있을 뿐인 물건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꾸역꾸역 일을 해나가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몸도 마음도 무거운 짐처럼 버거웠다.

엄마아빠의 흔적 그리고 그들과의 기억이 가득한 자리를 비우고 어떤 것은 그대로 두고 어떤 것은 고치고 또 바꾸어나가면서 엄마아빠의 공간이 나의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삶이 내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분이 보신다면 아마 좋아하시겠지 싶다가도 엄마아빠와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아린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사를 하고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고도 나는 뒤척이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 집이 엄마 아빠가 살던 집도 아니고 내가 살던 집도 아닌 새로운 집이 되어버린 까닭에 내 몸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집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정성을 다해 고쳤음에도 새로운 모습이 낯설어 깊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나서는 어렴풋한 풍경조차 낯설어 놀라곤 했다. 사빈은, 엄마아빠와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나왔을까.

나는 당장 사빈의 답을 읽고 싶지만 한편으론 최대한 미루어두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상반된 충동 속에 사빈의 글을 번역했다.



관계 (가족, 대인관계, 사회적인 관계)

저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당시엔 깨닫지 못했지만, 가장 슬펐습니다. 그 일이 그 순간에도 -이후로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 마음가짐과 삶을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것 같습니다. 이따금 생각합니다. 친구, 함께 일했던 동료들, 잠깐 여행에서 만난 사이라도, 가까웠던 이들과 헤어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땠나요? 그 이후로 무엇이 달라졌나요. 지금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혹 어머니에 대해 답하는 것이 어렵다면, 다른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셔도 좋아요. 당신에게 특별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이 언제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맞이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특히 헤어지는 순간 마음을 어떻게 달랬나요?


내 또래 직장 동료들이 부모님을 하나둘씩 잃어갈 때, 한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단다.

"이제 무료 카지노 게임는 어린아이로서 ‘완전한 고아’가 되는 동시에 점차 가족 내에서 부모의 역할을 맡으며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상실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의미하지. 하지만 동시에 자녀인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과제와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

내 어머니는 마지막 몇 달을 퀘들린부르크에 있는 요양원에서 보내셨단다. 이미 심각한 병을 앓고 계셨지. 나는 거의 매일 방문했는데, 어머니의 병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어. 어머니는 삶을 끝내고 싶어 했지만,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계속해서 도와달라고 요청하셨어. 그건 아마 "이제 나를 보내줘"라는 요청이었을 거야. 나에게 직접 그렇게 부탁하셨지. 내게는 정말 힘든 순간이었고 견디기 어려웠단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 곁을 자주 지킬 수 있었어서 그리고 어머니가 괴로움 속에 혼자 있지 않으셨다는 게 다행이었어. 그게 (가능했다는 게) 나를 위로해준단다. 어머니 생의 마지막 3일 동안, 우리는 어머니 침대 옆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어. 좋은 작별인사였다. 조용하고 평화로웠지. 나는 어머니가 원하신 대로 장례식을 치뤘어. 하지만 아직도 요양원 앞을 지나갈 때면 마음이 무거진단다. 그곳에는 (어머니의) 그림자가 있거든.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어하셨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내면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고 있어.

아버지는 오빠가 곁에서 임종을 지켜보았어. 아버지는 우리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우리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차를 몰고 그곳으로 급히 향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다시 한 번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오랫동안 아버지의 침대 곁에 머물러 있었지. 우리는 아버지에게 우리와 함께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아버지가 여전히 듣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가 모두 함께 앉아있는 것이 왠지 좋았지. 아버지는 그 순간을 즐기셨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어머니와 더 가까웠기 때문에 부모님의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랐던 것 같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죽음' 자체가 아니었어. 죽음은 삶의 일부, 우리 삶의 일부니까. ‘죽음’ 자체보다는 ‘죽어가는 과정’이 너무 끔찍하다고 느꼈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는지 어머니를 통해 강렬하게 경험했거든.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그 가족에게도 극심한 고통을 주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이 그런 과정을 겪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단다.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건 아니야.

나의 아버지는 2016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2018년에 돌아가셨어. 두 분 다 80세가 넘은 나이셨지. 내 가장 친한 친구는 2021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나의 조카는 2022년 34세의 나이로 자살을 했단다. 이렇게 많은 이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삶과 사람들에 대해 더 겸손해지고 관용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자신 안에 너무 많은 욕구를 갖고 살지. 어느 순간 무료 카지노 게임 모두는 죽는데, 어째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불필요하게 서로의 삶을 어렵게 만들어야 할까? 여기엔 합당한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최대한 함께 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금, 여기에서의 만남을 즐기길 바라.
80년대 나의 전 직장상사(좋은 상사였지)와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났단다. 이제 우리 둘 다 은퇴했고, 서로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지. 우리는 함께 자연 속으로 나서거나 강의를 듣기도 해. 그는 (함께 일했던 과거에) 어떤 문제에 대해선 매우 고집이 센 사람이었지만 이제 (다시 만나게 된 지금) 그와도 잘 지낼 수 있고 그를 어느 정도 온화하게 바라보며 그에게 필요한 여유를 줄 수 있게 되었지. 나는 내 경계를 가지고 있고 그도 그걸 잘 받아들이고 있지. 우리가 이렇게살 수 있다는 게 좋구나.


사빈의 이야기는 담담했고 차분했지만, 그녀의 이별도 나와 다르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낳고 길러준 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곁에서 그이를 지킨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역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고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인 것이다.사빈이 어머니의 고통을 함께 했던 장면들을 읽으며 내가 엄마의 침대 곁에서 함께했던 순간들이 겹쳐졌다. 사빈이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3일을 읽으며 엄마와 응급실에서 함께했던 2박3일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당연히 그녀에게도 각별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비밀이나 탄복하게 만드는 지혜 같은 것은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통스러웠을 것이 분명한 시간들을 헤아려보며 새삼스러웠다. 그녀의 어머니도나의 엄마도 그리고 그녀도 나도 결국은 우리 모두는 떠나는 과정 속에 있을 뿐.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조금이라도 마음을 나누며 덜어가고자뿐. 그리고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나서 남은 생을 더욱 따뜻하게 보내고자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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