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믿으며 엑셀을 꾹 밟았다.
바닷속에 뭉글뭉글하게 얽힌 덩어리들이 있었다. 쓰레기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므로 그 덩어리들도 더러운 오물들이 얽혀있는 것이겠거니 했다. 지긋지긋한 눈을 하고 덩어리들을 한참 쳐다보았다. 카지노 게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자반. 제주 몸국에 들어가는 그것 말이다.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았던 비바람을 겪고 난 후 덩어리들이 카지노 게임라는 걸 알았다. 모자반은 쥐어뜯긴 머리카락 뭉치들처럼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폭풍이 지난 후의 모습이란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언제까지고 바다 위를 떠다닐 것처럼 보이는 모자반. 계속 내리칠 것 같던 비바람도 결국은 멈췄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놓고도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몇 시간 뒤 카지노 게임는 보란 듯이 어디론가 흘러가 자취를 감추었다. 흘러간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앞으로 들이닥칠 비바람이 더 걱정되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흘러간 카지노 게임들이 등장하는 꿈을 꾸면 스스로가 몹시 당황스러워 모른 체하고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본다. 꿈속에는 아직도 전 직장 상사와 전남편이 등장한다. 그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굴고 꿈속에서의 나는 당연한 그들이 당황스러워서 잠에서 화들짝 깬다. 누구에게도 나의 무의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인정할 수 없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저께 새벽에는 S가 등장했다.
날씨가 우중충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S에게 가는 일을 미루고 있었던 탓이다. 커피와 과일, 쿠키를 싸 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곧 봄이 올 것만 같은 날씨였다. 그 사실이 무섭지 않은 걸 보니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엑셀을 꾹 밟았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S가 죽었다는 실감이 없다. 나는 극악무도하게도 죽은 애 앞에서 사는 게 무섭다고 징징거렸다. 살아있는 애들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냈다. S가 죽음 앞에 다른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일러주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시답잖은 일들 때문에 사는 게 너무 무섭다고. 그래도 어떡하겠냐고. 잘살아보겠다고. 심지어 행운을 빌어달라고 염치없이 굴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사진을 어루만졌던 오른손은 아직도 차가웠고 내리쬐는 햇살은 너무 따뜻해서 입고 있던 다운점퍼를 벗었다. 그래도 S가 죽고 내가 살아있음이 고맙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것만은 카지노 게임이었다. 그 정도로 염치가 없는 인간은 아니라서.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을 땐 무언가가 달려져 있었다. 보이진 않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봄에 집안은 여전히 겨울의 추위를 품고 있어서 바깥보다 더 으스스하다. 밖을 나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공간에서 홀로 겨울 속을 살고 있었다는 걸. 내 세상이 이렇게 좁고 추웠다는 사실을. 정말로 카지노 게임 오고 있었다.
멀뚱히 해초나 바라보면서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춤을 춰야겠다. 움직여야 한다. 전기장판 맛에 빠진 뒤로는 그 반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전기장판에 누워있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하루를 보냈다. 그 위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시간을 보냈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알다시피 나란 인간은 엄청 괴로워하면서 전기장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이 진짜 쓰레기 같이 느껴지면 울음이 아니라 웃음이 나카지노 게임. 나는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웃었다. 이미 바깥은 따뜻해진 줄도 모르고서. 너 같은 쓰레기는 이 세상에 없어. 하하하핫.
지금도 거실에 깔아놓은 전기장판을 치우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그곳으로 들어가 기꺼이 쓰레기가 될 자신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가오는 봄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 전기장판을 치워버릴 날은 반드시 온다. 10년 전 S가 끝내 보지 못한 벚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어났듯이. 그렇게 봄은 끈질기게 야속하게 카지노 게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