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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햇살 Sep 06. 2024

작가가 카지노 게임 싶었던 소녀의 꿈은

('마주한 순간 비로소 꿈을 꾸었다' 본문 중에서)

나도 처음부터 열정넘치고,하고 싶은게 많은 아니었다. 그저 꼬질꼬질한 시골 카지노 게임에 불과할뿐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충청북도 한 자락에 위치한 시골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도 몇 대 다니지 않는 깡촌.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것도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에 버스가 다니기 전까진 40분을 걸어 큰 도로로 나와 버스를 타야만 읍내에 갈 수 있었다. 물론 버스로도 20분은 더 가야 했고. 행여 마을버스를놓치기라도 하면큰 도로로 나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기에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닐 때엔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새벽같이 일어나곤 했다.

(중략)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 순탄한 3학년을 지내고 있을 여름 무렵, 안 좋았던 가세가 더 기울고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셨다. 병을 앓고 계셨기에 갑작스럽다는 표현이 맞진 않지만 늘 곁에 계실 것 같던 아빠가 내 곁을 떠나신 건 어린 나이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농사를 업으로 삼으셨던 엄만 아빠의 부재로 더 이상 혼자 일을 하실 수 없게 되었고,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공장 일을 택하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아빠의 병원비로 빚까지늘어수입이 거의 없는농사일에 더 이상 연연하실 수가 없었다.


엄만 아침 일찍 일을 나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시고 중고등학생이 된 언니들도 늦게 오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난 늘 외로웠다.엄만 최선을 다해 내 맘을, 우리 마음을 헤아려주려 노력하셨지만 난 오히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걱정하지 않도록 외롭지 않은 척, 애써 밝은 척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힘들고 외로운 맘을 맘껏 표현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담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선 외롭고 어렸던 날 많이 감싸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또, 아빠처럼 다정히 대해주셨다.


그런담임선생님을 보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 그게 내가 처음으로 원한장래 희망, 나의 첫 번째 꿈이었다.

(중략)

그렇게 내가 처음 가진 카지노 게임 중학생까지 이어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가 열렸다. 평소 끼적이는 걸 좋아하던 나는 엄마와 관련된 수필을 정성껏 적어 대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우수상을 받았다. 최우수상은 아니었지만 내가 쓴 글로 상을 받았다는 게 무척 기쁘고 짜릿했다. 그저 좋아서 조금 끼적여봤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은 내 꿈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난 작가가 카지노 게임 싶어졌다. 내가 상상하는 이야기를 로 적어내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작가를 꿈꿨다. 내가 주인공을 직접 캐스팅하고 연출하며 서사를 그려낸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난, 이야기를 꾸며나갈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가 되기 위해 시시콜콜한 것도 끼적이며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사실 쓰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것은 취미가 아니었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카지노 게임의 말씀으로 인해 도서부에 들어가 책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때의 난 중학교 2학년이었다.


1년이 지나고3학년이 됐을 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담임 선생님과진로상담을 해야 했다. 카지노 게임께선 결정해 둔 고등학교가 있냐며 무얼 하고 싶냐고 물으셨고, 난 당연히 문과에 진학해 국어국문학과나 문학과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글 쓰는 걸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때만 해도 고등학교 진학은 내신 성적과 학력평가를 합산해서 합격해야만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었기에 성적이 되지 않으면 선생님들께선 원서를 써주지 않으셨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께선 인문계에 갈 수 있는 실력이라며 그렇게 진행해 보자고, 내 꿈을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1학기를지나 2학기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난 급하게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작가들은 돈은 많이 못 벌지 않냐?”

은연중 현실을 이야기한 친구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고, 그 뒤로 현실이 다가와 내게 말했기 때문이다.

“꿈 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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